상법개정② 세계는 어떻게 하고 있나 – 왜 한국만 예외인가
이 글은『상법 개정』시리즈의 2편입니다.
충실의무는 이미 선진국의 기본 제도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만 예외일까요?
선진국은 이미 기본 장치를 갖췄다
충실의무(Fiduciary Duty)란 경영진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법적 책임입니다.
이 제도는 선진국 대부분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이해충돌 상황에서 경영진의 책임을 명확히 따질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 미국은 델라웨어주를 중심으로 ‘Entire Fairness’라는 기준을 적용합니다.이는 거래의 가격뿐만 아니라 절차의 공정성까지 입증하지 못하면, 경영진이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 영국은 Companies Act를 통해 경영진이 회사의 장기적 성공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함을 명시하고 있으며,
- 일본은 회사법 개정을 통해 충실의무, 내부통제의무, 파생소송 제도를 확립해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경영진의 결정이 회사 전체, 특히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제도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왜 예외인가
한국은 충실의무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2009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대법원 판결 이후,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으면 배임이 아니다”는 판례가 굳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경영진이 대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려도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한국에도 파생소송 제도는 있지만 요건이 까다롭고 인정 사례가 거의 없어, 실질적인 경영 감시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또한 대규모 내부거래나 물적분할 시 외부 공정성 평가 의무도 없어, 소액주주 입장에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습니다.
결국 이런 제도적 공백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편법 승계, 물적분할 상장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게 만든 것입니다.
반대하는 자들은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진은 더 이상 대주주에게만 유리한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일부 정치권, 재계, 경제단체에서는 개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명분은 “소송 남발 우려”, “경영 위축” 등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총수 일가가 누려온 네 가지 구조적 특권을 지키려는 목적이 강합니다.
- 일감 몰아주기: 상장회사가 총수 지분이 있는 비상장사에 이익을 넘기는 구조
-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기존 주주 권리는 희석되지만 총수 지배력은 강화
- 편법적 우회 상속: 합병·분할·이해상충 거래를 통해 지분 희석 없이 경영권 유지
- 총수 중심의 자본배분 결정권: 배당·자사주·투자 의사결정이 이사회가 아닌 총수 일가 중심
이러한 구조는 충실의무가 법제화되면 유지가 어려워지고, 그래서 상법 개정을 가장 꺼리는 이들이 바로 이 구조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는 당사자들입니다.
상법개정 전에 움직이는 이들
최근 대기업들이 물적분할이나 구조개편을 서두르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카카오의 카카오엔터 상장, LG CNS 지분 정리 등은 상법 개정 이후 도입될 제도적 제약을 피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상법 개정은 단지 미래를 위한 법 개정이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제도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응책이라는 점에서 시급성과 필요성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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